Teresa Bejan: Is civility a sham?
테레사 베잔(Teresa Bejan): 예의 바름은 속임수일까?
Teresa Bejan writes about political theory, bringing historical perspectives to bear on contemporary questions. Full 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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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er discretion is advised
시청자께서 신중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a book about civility,
관한 책을 저술했기 때문이고
American presidential election,
무렵이었기 때문입니다.
to come and talk about civility
많이 받기 시작했는데요.
in American politics.
더 필요한지 말해달라는 거였죠.
that book about civility
책을 저술한 이유였는데요.
that civility is ...
like a highly uncivil thing to say,
예의에 어긋나게 들리겠지만
출판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of civility and religious tolerance
관용에 대해 연구하면서
that there is a virtue of civility,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it's actually absolutely essential,
오히려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that promise not only to protect diversity
약속할 뿐만 아니라
even hateful disagreements
인정한다고 약속하는 사회입니다.
'disagreement' 라는 단어를 보면
'불쾌한'의 뜻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다.
for "unpleasant."
Thomas Hobbes pointed out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of disagreement is offensive.
모욕적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It works like this: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서로 다릅니다.
전 늘 옳은 말만 하거든요.
that you are so very, very wrong?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come to a different conclusion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을 테니까요.
아니면 멍청하거나
you must be stupid,
아마 미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of your disagreeing with me
다르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to my views, but to my intelligence, too.
절대적으로 모욕입니다.
when the disagreements at stake
의견 충돌이 생길 때입니다.
consider to be fundamental,
or to our identities.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이죠.
말하는지 다들 아실 거예요.
of popular culture, at the dinner table,
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really, seriously disagree about,
의견이 대립하게 되는 경우이고
their opponents in the controversy.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those fundamental disagreements
that tolerant societies
propose to tolerate,
historically, at least,
the happy-clappy communities of difference
이유가 설명될지도 모릅니다.
where people have to hold their noses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despite their mutual contempt.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죠.
from studying religious tolerance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종교적 관용에 대한 연구였죠.
that the virtue that makes
공존이 가능한 이유는
if you will, possible,
our disagreements tolerable
참을 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ven if we don't share a faith --
함께 살 수 있는 것이죠.
talk about civility today --
예의 바름을 따집니다.
about civility a lot --
정말로 많이들 말하는데요.
possible to tolerate disagreement
인정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고
실제로 논쟁할 수 있다면
engage with our opponents,
a strategy of disengagement.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to take your ball and go home
위협하는 것과 약간 비슷해요.
the sin of our opponents.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sudden-onset amnesia,
as an appropriate response
적절한 대응이라고 말합니다.
who is set out to destroy
어떻게 예의를 갖출 수 있어?
that most of today's big civility talkers
모호하고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는 거예요.
civility actually entails.
is simply a synonym for respect,
유의어라고 흔히 말하고
that to accuse someone of incivility
예의 바르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than calling them impolite,
훨씬 훨씬 더 나쁩니다.
is to be potentially intolerable
잠재적으로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to accuse them of incivility,
예의 없음으로 비난하는 것은
that they are somehow beyond the pale,
있다고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engaging with at all.
that makes fundamental disagreement
근본적인 의견 불일치가..
sometimes occasionally productive.
생산적이 되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really, really difficult.
또한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complete bullshit,
완전 헛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 어색한데요..
about civility.
계속 말하고 있으니까요.
have been warning us for decades now
수십년 동안 경고한 것이 있습니다.
is facing a crisis of civility,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죠.
on technological developments,
과학기술의 발달 때문이라고 탓하며
talk radio, social media.
SNS 같은 것들을 비난했습니다.
of disagreement,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that the first modern crisis of civility
예의 바름의 첫 번째 근대적 위기는
named Martin Luther
어느 신학 교수가
in communications technology,
인쇄물을 만들었죠.
the Protestant Reformation.
종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as the Twitter of the 16th century,
16세기의 트위터라고 한다면
원조나 마찬가지예요.
자신은 기도할 때마다
없었다고 했어요.
i.e. Catholic, opponents.
그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clutched their pearls
그 말에 깜짝 놀라서
they gave as good as they got
똑같이 되돌려 주었습니다.
비하했습니다.
as an insult.
모욕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죠.
civility talk, then as now,
이야기할 때 중요한 점은
your opponent for going low,
of the moral high ground
차지하는 것입니다.
행동할 수 있으니까요.
sets up the speaker
예의를 지키는 본보기가 되고
while implicitly, subtly stigmatizing
무례하다고 낙인 찍히기 때문이죠.
to disagree as uncivil.
becomes a really effective way
예의 바름을 거론하는 것이
좋은 수단이 되었습니다.
outside of the established church,
억압하고 배제하는 수단으로 쓰였죠.
against the status quo.
저항할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could lecture atheists
목사들이 설교를 할 때는
문제삼곤 했습니다.
of shaking hands.
pretexts for persecution.
protesters in the 20th century.
입을 막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죠.
why partisans on both sides of the aisle
frankly, antiquated,
이유를 알 수 있죠.
'공손함'을 들먹거리면서요.
that certain people and certain views
그들의 특정한 견해가
themselves the trouble
수고를 덜기 위해서입니다.
tend to roll our eyes
따분함을 느끼곤 합니다.
conversational virtue begin,
our social and political divisions,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죠.
is actually making the problem worse.
of actually speaking to each other,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하고
past each other or at each other
자기 주장만 펼치게 만듭니다.
which side we're on.
사람들에게 알리려 합니다.
one might be forgiven, as I did,
용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so much civility talk is bullshit,
헛소리라고 친다면
must be bullshit, too.
헛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historical perspective goes a long way.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early modern crisis of civility
미국과 같은 곳을요.
to protect disagreement
이견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was the virtue of civility.
예의 바름의 미덕이었습니다.
for us to share a life,
그럴 수 있었던 것은
that is perhaps less aspirational
어쩌면 열망이 덜하고
who talk about civility a lot today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mere civility."
'최소한의 예의'라고 하고 싶습니다.
that allows us to get through
유지하는 데에 필요하죠.
of the other party.
관계도 물론이고요.
is to meet a low bar grudgingly,
마지못해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니까요.
that's meant to help us disagree,
우리가 반론할 수 있기 때문이죠.
all those centuries ago,
for a reason.
의미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겁니다.
what exactly is civility or mere civility?
정확히 무엇일까요?
같지도 않고 같을 수도 없습니다.
as being respectful or polite,
when we're dealing with those people
사람들을 대할 때이기 때문이죠.
or maybe even impossible, to respect.
can't be the same as being nice,
친절함과도 같을 수 없습니다.
people what you really think about them
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 두고 말하는 거예요.
means not pulling our punches,
비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not landing all those punches all at once,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to disagree fundamentally,
the possibility of a common life tomorrow
파괴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are standing in our way today.
가로막고 있더라도 말이죠.
civility is actually closely related
다른 덕목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to make yourself disagreeable,
동의하지 않을 용기를 갖는 거예요.
calling bullshit on people's civility talk
헛소리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from studying the long history
제가 뭔가 배운 것이 있다면
in the 17th century, it's this:
연구에서 이걸 깨달았습니다.
as a way to avoid an argument,
예의 바름에 관해 말하고
in the more agreeable company
자신을 고립시키는 수단이 되어
who already agree with you,
동의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never actually speaking to anyone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고
disagrees with you,
사람들과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잘못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ABOUT THE SPEAKER
Teresa Bejan - Political theorist, authorTeresa Bejan writes about political theory, bringing historical perspectives to bear on contemporary questions.
Why you should listen
Teresa Bejan is Associate Professor of Political Theory and Fellow of Oriel College at the University of Oxford. She received her PhD with distinction from Yale in 2013 and was awarded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s 2015 Leo Strauss Award for the best dissertation in political philosophy. In 2016 she was elected as the final Balzan-Skinner Fellow in Modern Intellectual History at Cambridge. Her inaugural lecture, "Acknowledging Equality," can be viewed here. Bejan publishes regularly in popular and scholarly venues and has taught at universities across the US, Canada, and the UK.
Bejan's first book, Mere Civility: Disagreement and the Limits of Tolera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2017) was called "penetrating and sophisticated" by the New York Times, and her work has been featured on PBS, WNYC, CBC radio, Philosophy Bites and other podcasts. In addition to her many articles in academic journals and edited volumes, she has written on free speech and civility for The Atlantic and The Washington Post.
Teresa Bejan | Speaker | TED.com